세심하게 수업자를 살펴야 합니다.

수업자에게 새로운 과제를 도출하는 것이 이 수업의 과정의 핵심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야만 수업자를 지속적인 성장의 과정에 올려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과제 도출은 보통 현실과 목표의 괴리를 좁히려는 노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참관록에 기입할 두 번째 칸인 ‘부합하지 못한 장면’은 수업자를 성장시키기에 굉장히 좋은 소재입니다.


하지만, 이를 대화의 소재로 삼는 것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참관하는 입장에서 ‘부합하지 못한 장면’을 기록하는 순간에는 참관하는 선생님이 바라보기에 뭔가 아쉽거나, 잘못되었거나, 부족하거나 등 목표에 부합하지 못한 것 처럼 보이는 장면을 발견합니다. 아무리 수업자의 의도에 비추어 장면을 바라본다고 하더라도 ‘부합하지 못한 장면’에 적히게 되는 상황은 참관 선생님이 바라보기에 잘 진행되지 않은 수업 장면인 것입니다. 이 내용을 참관선생님이 수업자에게 먼저 이야기 한다면 수업자는 자신의 잘못을 지적받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전달하려고 해도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영상으로 해당장면에 대한 코멘트 없이 보여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장면을 선택한 것 부터 수업자에게는 잘못된 장면이라고 상대방이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수업자가 방어적 태도를 취하는 순간 더 이상의 성찰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내용을 먼저 참관선생님이 꺼내는 것은 삼가거나 뒤로 미루어야 합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어떤 이야기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최대한 미뤄두었다 꼭 해야하는 중요한 요소라면 대화의 분위기를 살피며 진행해야 합니다. 관계와 분위기가 적합하지 않다면 오히려 다루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지속적으로 함께 수업을 고민하고 나누다보면 관계는 깊어지고, 신뢰가 쌓입니다. 긴 호흡으로 진정한 친구를 사귀는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하면 좋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업자가 스스로 자신의 수업에 대해 이야기 하도록 해야 합니다. 교사는 언제나 자신의 수업에서 아쉬운 부분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수업자에게 아쉬운 부분, 자신의 목표에 부합하지 못한 장면들을 본인의 입으로 이야기 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관 선생님이 이야기 하고 싶었던 장면이 수업자가 이야기하는 장면과 동일하더라도, 말하는 순서에 따라 수업자가 느끼는 감정은 전혀 다릅니다. 

진행자는 수업자의 발언에 대해 깊이를 더해주어야 합니다. 목표에 부합하지 못한 장면을 여러개 꼽았다면, 기록해두고 하나씩 차례대로 충분히 다뤄야 합니다. 시간 여건상 다 다루기 힘들 수도 있으니 적절히 우선순위를 배분하고, 모든 주제를 다 다룬다는 생각보다는 하나라도 제대로 깊이 있게 다룬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좋습니다.

수업자에게 목표에 부합하지 못한 장면을 물어보면, 영화 ‘지상의 별처럼’의 이샨 아버지처럼 증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학생들이 이런 모습을 보였다.’와 같은 형태죠. 이 때 진행자는 수업자가 해당 장면에서 기대하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명확하게 밝히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수업자는 ‘무엇을 기대’했기에 자신의 의도에 부합하지 못했다고 여겼는지, 목표와 현실의 괴리를 먼저 확실히 해 두어야 합니다. 목표가 분명치 않으면 대화가 길을 잃기 쉽기 때문입니다. 대화를 깊이 있게 하려다 보면 때론 이런 저런 이야기가 섞여, 대화가 잘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이 때, 지금 나누는 대화가 교사가 기대하는 목표로 나아가는 대화인지 끊임없이 반추해보아야 합니다. 

목표가 분명해지면 그 목표를 이룬 다른 장면들을 공유하면 수업자가 보다 편안하게 해당 주제에 대해 대화나누는 데 도움이 됩니다. 교사의 목표가 실제로 어떻게 교실에서 구현되어야 하는지 확인할 수 있고, 현재 교사의 목표에 부합하지 않은 장면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대화의 준비가 어느 정도 되었다면 이제 원인을 찾아봐야 합니다. 이 원인은 수업자 자체와 수업자가 구성하는 교실 환경, 수업자가 학생들에게 제시한 학습자료, 수업자가 사용한 언행 등 추후에 수업자가 주체가 되어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변화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원인을 수업자가 제어가능한 것으로 한정하면 원인을 드러내는 일이 수업자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 자칫 문제의 원인이 수업자인 것처럼 여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원인을 찾는 일은 증상처럼 객관적으로 보이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닌 화자의 가설이 포함되게 됩니다. 이는 수업이나 수업자에 대한 평가처럼 전달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심하게 수업자를 살피며 대화를 진행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수업자가 목표에 부합되지 못한 장면들의 원인을 마주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러려면 제시된 원인이 수업자에게 납득가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가설을 수용하고 성찰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설에 힘을 보태기 위해 앞에서 수업을 참관하는 방법에서 참관록에 최대한 많이 적어주기를 부탁드렸습니다. 하나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여러 사례들이 나온다면 그 가설은 수업자도 받아들이고 변화를 모색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예를 들어, 수업자가 학생을 발표시키는 데, ‘선생님은 영수가 한 내용이 참 마음에 들었어. 영수가 공유해 줄 수 있겠니?’라는 발언을 보며, ‘마음에 든다.’는 표현이 ‘학생들이 정답만 발표가능 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진 않았을까?’라는 가설을 세우고 수업자에게 이야기 합니다. 이럴 경우, 너무 확대해석 하는 느낌이 들며, 좋은 의도로 한 자신의 행동이 비판받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수업에서 칠판에 나와 발표하는 총 3번의 발표기회에서 수업자는 ‘마음에 드는’ 이라는 표현을 모두 사용하며 발표자를 선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발표자가 첫 번째 발표했던 영수가 다시 선정되자, 한 학생이 ‘영수는 아까도 발표 했었는데…’라는 불만섞인 혼잣말을 하는게 목격됩니다. 이처럼 여러 증거들은 수업자가 발표자를 선정할 때, 평가가 포함된 발언을 함으로써, 학생들에게 발표자의 선정은 교사의 인정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 적극적으로 발표하려 들지 않는 교실문화를 만든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속에서 원인에 대해 수업자가 동의하게 된다면, 이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들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 증거들과 합리적 가설이 존재하더라도 수업자는 불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섬세하게 수업자의 감정의 선을 읽고 따라가야 합니다. 동시에 진행자도 진행하는 도중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수업자가 마음을 닫는 이유는 절대 수업자에게 있지 않습니다. 만약 마음이 닫히는 순간이 있다면, 그 순간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어떤 언행이 수업자를 불편하게 만들었는지, 그 원인을 자신에게 찾아야 합니다. 이러한 태도를 가지는 것은 자신의 성장 뿐만 아니라 상대 수업자의 선생님에게도 ‘이 진행자는 정말 나를 위해 이 자리에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 다시금 대화의 문을 열고 나올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